기 제사장 대신 추모예배

기제사는 사전적으로 “탈상 후 매년 사람이 죽은 날에 지내는 제사”을 말한다.집에서도 아버지의 기준에서는 할아버지까지 저의 기준에서는 증조부까지 아들의 기준으로는 높은 할아버지까지 제사를 지낸다.동일 인물이지만, 기준점에서 보면 명칭이 바뀐다.문제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복 제사를 각각 갔기 때문에 과거에는 일년에 준비해야 하는 제사가 너무 많았다.이 점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제사의 의미를 돌아보게 했다.과연 제사는 우리에게 무엇인가?이런 문제 제기와 작은 반발이 쌓이면 결국 제사를 통폐합하게 됐다.물론 이를 우리 집에서 단독으로 하지는 못했다.살아 있는 전설이자 할아버지나 형제에게 상담해야 했다.이제 다 늙은 노인이라 제사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함께 나이 든 장남의 집에 강요만 하지도 못하는 처지라 제사의 통폐합이 결정되었다.그렇게 몇년 동안 제사를 올리고, 또 다른 고민을 하게 됐다.개신교를 믿는 우리 집(장남)에서 제사 대신 추모 예배의 형식으로 바꾸는 것을 노인에게 물었다.이미 70세를 넘어선 아버지의 제안에 할아버지들도 허용했다.그래서 2010년대부터는 추모 예배 형태로 복 제사에 대체했다.또 명절에도 제사 대신 예배를 드린다.이렇게 됨으로써 여성들은 음식을 살 뿐 고통에서 남자들이 제사의 진행과 맏형이란 심적 부담을 조금은 벗어났다.당분간 어머니가 예배의 준비를 하다 지난해부터 나에게 하라고 했다.정확히 지난해 추석 때부터 내가 가족 예배 형식으로 진행했다.그리고 올해 설에 이어오늘 복 제사까지.신뢰가 부족하고 예배의 진행이 서투른 저로서는 선뜻 부담이다.성경의 어느 말을 전하면 좋을까, 어떤 찬미가(복음 송)를 부르면 좋을지, 기도는 누가 하려는가, 설교의 내용은 어떻게 충족시키는지 등, 고민은 길었다.그래서 컴퓨터 앞에 앉아 몇시간을 고민하고 지침서를 만들었다.완벽한 창작물이 아니다.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제사나 차례 때 알리는 좋은 성경 구절과 말씀을 찾아보고 우리 집의 사례에 맞게 각색했다.노래는 되도록 내가 좋아하고 의미 있는 것을 택하였다.내용을 정리한 것을 나만 보지 않고 참가한 가족 전원이 볼 수 있게 순서지를 만들어 제공했다.어른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3회 하고 보면 어색함은 조금 사라지고 가족 앞에서 수업을 하게 말해내 모습이 여전히 적응할 수 없다.어머니는 좋다고 항상 눈물을 글썽이고 있지만 나로서는 아쉬움이 남아 있다.자주 없고 완전 제 전공이 아니기 때문에 부족을 크게 느끼는 것이다.그래도 앞으로 계속해야 할 일에 책임감을 갖고 싶다.게다가 현재 교회 출석을 거부하는 아들도 함께 예배를 하기 때문에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은 더 크다.말을 일방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중간 중간에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기회를 넣어 딱딱한 예배에서는 없이 참여하는 예배에 진행하고 아들도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있다.기분 좋은 순간이었다.어린 시절 주위의 어른들은 나에게 “장손”이라는 이미지를 잘 새기게 한다.명절과 집안 행사 때마다 나를 불러서는 “당신은 장남이니까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순진하고 무지했던 저는 그것이 나를 대접해서 주고 높이고 준다고 착각하고 어깨를 움츠리고 순순히 말을 들었다.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나에게 제사는 나이가 들면서, 사회 생활을 하면서 점점 기존에 갖고 있던 생각과 달리 바뀌어 갔다.특히 제가 가지고 있던 장손의 이미지는 점점 퇴색되고 거리를 둬야 할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게다가”결혼한다면, 장남이니까 절대 말하지”이라고 했다.그래서 나의 결혼이 많이 늦었지?(웃음)사실은 그렇지 않는데^^다다행히 아내는 시댁 제사에 자주 참여하면서 장남인 남편을 이해했다.그동안 아내에게 대단히 감사하고 있는 부분의 하나이다.이제 여러가지 홀수 제사가 폐지되면서 추도 예배로 바뀌면서 그동안의 노고가 많이 사라졌다.그래서 명절의 고통은 대부분 옛 말이 됐다.다만 저에 예배 진행의 부담이 내려온 것을 제외하고.아내에 시댁이라는 곳의 부담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짐을 많이 내리지 못하고 큰 다행이라고 생각한다.우리 아이들, 특히 아들이 나이가 더 들었을 때는 어떻게 달라질지 기대된다.전통이 무조건 나쁘지 않기 때문에 모두 날리고 바꾸기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의 의미를 재확인하고 조상을 생각해내시간은 어떤 형태로든 남아 달라는 지도의 소원을 여기에 남긴다.딸도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시달리지 않는 삶을 보냈으면 좋겠다.또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추모 예배는 전통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전통을 여는 계기가 되는 것을 알기 바란다.사실 전통은 항상 시대에 맞게 달라진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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